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속도를 내면서 농협중앙회의 지방 이전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적 명분만으로 모든 기관을 획일적인 이전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특히 농협중앙회는 일반 공공기관과 법적 성격과 조직의 특성이 다른 만큼, 지방 이전 문제 역시 농업·농촌·조합원에게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농협중앙회의 법적 성격이다. 농협중앙회는 정부가 설립·운영하는 일반적인 공공기관이 아니라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농·축협을 회원으로 설립된 협동조합의 중앙조직이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도 구성원 간의 상호부조와 복리증진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은 공공기관 지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실제 2026년도 공공기관 지정·고시 명단에도 농협중앙회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농협중앙회를 일반 공공기관과 동일선상에 놓고 지방 이전을 추진하려는 것은 현행 법체계와 농협중앙회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접근으로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농협의 본질과 조합원의 뜻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농협의 근간은 조합원이며, 협동조합이 지켜야 할 핵심 가치는 자율성과 독립성이다. 헌법은 농어민의 자조조직을 육성하고,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으며, 농협법 역시 국가와 공공단체가 농협과 중앙회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을 뒤로한 채 조합원과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 정책이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본부 이전을 추진한다면 협동조합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훼손하고 농협의 설립 취지마저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방 이전에 따른 현실적인 부담도 결코 가볍지 않다. 농협중앙회 본부 이전은 단순히 사무실의 소재지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사옥과 시설, 전산시스템의 이전은 물론 조직 재편과 인력 이동·정착, 전문인력 확보 등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조직 운영비 증가와 인력관리 부담이 커지고 업무 효율성과 연속성이 저하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 부담과 부작용을 외면한 채 지방 이전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부담이 결국 조합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농협의 재원은 농산물 판매·유통 확대와 영농 지원, 지역 농협의 경쟁력 강화 등 농업인의 실익을 높이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그러나 대규모 이전과 정착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운영 부담까지 가중된다면 농업인 지원사업과 경제사업에 투입돼야 할 재원이 줄어들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농협 본연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만으로 농협중앙회의 지방 이전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농협은 이미 전국의 지역 농·축협과 다양한 사업망을 통해 농업·농촌 현장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지역에 실질적인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본부를 물리적으로 이전하기보다 지역 농협의 경제사업을 활성화하고 농산물 유통·판매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농촌지역에 투자와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실효적인 방향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농협중앙회의 소재지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업·농촌의 현실을 개선하고 농업인의 실익을 높이기 위한 해법을 찾는 일이다.
한종협은 농협중앙회 지방 이전이 지역 간 유치 경쟁이나 정치적 성과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정부는 정치적·지역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농협중앙회의 법적 지위와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며, 이전에 따른 비용과 조직 운영상의 문제, 농업인 지원사업과 경제사업에 미칠 영향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조합원과 농협 구성원의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절차를 거쳐 신중한 결정을 내릴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박시경 kenews.co.kr